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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esday, August 21, 2012

the vary of missing beautiful Jeogori history,showing on the under wear,with missing on the beautiful traditional costumes by Binkkum


http://emptydream.tistory.com/m/post/view/id/3284


하의실종 식상하다 상의실종 보여달라, 아름다운 전통의상 상의실종 되살리자
빈꿈 2011/10/19 17:37 |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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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요즘 우리나라에서도 심심찮게 보이고 있는 바디페인팅을 보고, 아무리 색칠을 했지만 이건 세미누드 아닌가라는 의문을 품었다. 얼마전엔 영화제에서 꽤 논란이 된 한 여배우의 파격 드레스도 있었고.

하지만 남녀노소, 아들 손자 며느리 온 가족이 함께 나와 바디페인팅을 구경하는 것을 보고, 세상이 변하고 있구나 라는 쪽으로 생각을 가다듬었다. 이젠 그 시대의 조류를 막거나 숨길 수 없게 된 거다.

그 여배우의 파격 드레스도 며칠동안 내내 인터넷 포털사이트 여기저기서 보였으니, 세 살 짜리 애들도 다 볼 수 있었지 않나. 게다가 바디페인팅으로 검색하면 누구나 볼 수 있는 사진들이 인터넷에 널려 있다.



그렇다고 바디페인팅 검색어도 19금으로 지정할건가? 그건 반대다. 바디페인팅이 꼭 윗도리 벗고 팬티만 입고 하는 것만 있는 건 아니니까. 그리고 바디페인팅 자체는 야하다는 이미지와 전혀 상관 없다. 그러니 어쩔 수 없는 거다, 상반신 노출 정도는 막을 수 없는 시대적 조류다.

참고로 중국 바디페인팅을 검색해 보거나, 좀 더 들어가서 중국 포털사이트에서 중국어로 바디페인팅을 검색하면 좀 더 다양한(?) 것들을 볼 수 있지만, 애들 한테는 알리지 말라.



어쨌든 어차피 시대가 그런 흐름을 탔다면, 이제 상의실종 패션도 나올 때가 되지 않았나 하는 엉뚱한 생각으로 가볍게 시작한 조사가, 점점 깊이깊이 들어가면서 시대고증의 영역까지 들어가버렸다. 나름 할 일도 많은데 자꾸 깊이 들어가다보니 어느 부분에서 잘라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이제 딱 자르고 대강 포스팅을 하기로 결정했다.








혹시 인터넷에서 위 사진들을 본 적 있는가? 흔히 조선말기에 여인들이 가슴을 내놓고 다녔다며 그 증거사진이라고 제시되는 사진이다. 하지만 이 사진은 일제 홍보 사진사에 의해 연출된 사진이다. 즉, 자연스럽게 찍은 사진이 아니라, 다분히 의도된 것이 있는 사진이라는 뜻이다.



이 사진에 관한 이야기는 2007년 8월 19일에 방영된 SBS 스페셜 96회, '일제사진, 그 비밀과 거짓말' 편에서 자세히 알 수 있다 (링크는 맨 아래 참고자료에 걸겠다, 본문 중간에 거는게 귀찮아서).

방송에서 나온 이 사진들에 대한 사연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이 사진은 일제가, 조선은 원시적인 국가고, 일제에 의해 근대적인 국가로 계몽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찍은 사진들 중 일부로, 그림엽서로 제작되어 널리 쓰이게끔 의도적으로 만든 것이라 한다.

일제는 이런 사진들을 통해, 조선 통치의 당위성과 함께, 원시 조선의 섹슈얼한 호기심을 세계적으로 불러 일으키고자 의도했다.

아마도 그 주장이 맞을 테다, 아무리 젖가슴을 노출하는 것이 그다지 흉이 되지 않았던 시대라도, 대놓고 사진을 찍는데 응할 정도는 아니었을 테니까. 게다가 그 시절에는 사진을 찍으면 영혼을 빼앗긴다든지, 조선의 어린이 눈알을 빼서 사진기 안에 넣었다든지 하는 소문이 무성할 때였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조선말기에 아낙들이 젖가슴을 드러내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그건 분명히 유행하고 있었던 풍속이었다.





위 그림은 프랑스 판화가 폴 쟈꿀레(Paul Jacoulet, 1896-1960)의 작품으로, 2006년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되기도 했던 작품들이다. 이 작품들을 보면, 조선 말기엔 여인들이 가슴을 내놓고 다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위 그림도 서양 화가가 그린 것인데, 조선인과 서양인의 조우를 그리고 있다. 정신없이 자료수집을 하다가 미처 기록을 해 두지 못했지만, 그 당시 영국인가 프랑스인가 잡지에 실린 삽화라 한다. 그림을 보면 항아리를 머리에 인 아낙이 가슴이 드러나게 옷을 입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서양인의 눈으로 본 것 말고도, 우리나라 사람의 눈으로 보고 그린 그림들에서도 이런 모습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대표적인 화가가 신윤복과 김홍도다.




위 그림은 일단 여자들이 멱감는 모습을 훔쳐보는 형태를 하고 있지만, 오른쪽 구석에 머리에 뭔가 이고 가는 아낙을 보면, 딱히 멱을 감지 않더라도 가슴이 노출되고 있는 걸 볼 수 있다.




이 그림은 기생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데, 자세히 보면 저고리와 치마 사이에 꽤 공간이 남는걸 볼 수 있다.




신윤복의 미인도 중 하나.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무엇을 봐야 하는지 알 수 있을 테다.




이김홍도의 그림에서도 상반신을 노출한 여성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신윤복의 아기 업은 여인을 보면, 그 시대 유행했던 짧은 저고리를 '모유 수유를 위한 것'이라고 말 하고자 하는 듯 하다. 어쩌면 그 시대 저런 옷차림을 못마땅하게 바라보는 근엄한 남자들에게, "니들은 어릴 때 엄마 젖 안 빨았냐"라고 둘러치는 듯 하다.






이 마지막 그림에서는 사냥을 하러 가는지, 하고 오는지 하는 선비와, 빨랫터에서 멱을 감는 아낙의 시선이 은근히 만나고 있다. 시선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제 그 다음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 지, 싹트는 연정에 은근히 에로틱한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는 작품이다. 여기서도 남자가 지나가도 가슴 정도 보이는 건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림 하나하나의 설명은 다 건너뛰자. 지금은 그림을 설명하기 위한 포스팅이 아니니까. 간송미술관에 가면 이 그림들 중 일부를 실제로 볼 수 있으니, 때 맞춰 가보시기 바란다. 간송미술관은 일 년에 딱 두 번만 일반인들에게 오픈하는 미술관이다 (미술관 소개까지 하고, 이러니 내용이 자꾸 산으로 가지).





(자료출처: 조선 여인 저고리 길이 300년간 2/3나 짧아져 <- 아름다운 우리 저고리 책 안내 기사.)




그림 외에도 각종 서적에서도 이에 관해 언급한 것들이 있다. 대표적인 책이 한복 디자이너 김혜순 씨가 쓴 '아름다운 우리 저고리'라는 책이다. 저고리의 변천사에 대해 스스로 고증하고 조사한 내용들을 기술해 놓은 책인데, 이 책에 따르면 위 그림처럼 저고리가 바뀌어갔다는 걸 알 수 있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저고리가 짧아진 것이 오히려 남성중심사회 문화의 발현이라는 것이다. 16세기 정도만 해도 남자의 웃도리와 별반 차이가 없었던 것이, '여자가 감히'라는 생각에 따라 변하게 된 것이다. 어쩌면 그 반발로 인해 젖가슴이 훤히 보일 정도로 짧은 저고리가 나오게 된 건지도 모른다.



이에 대해 또 다른 한복전문가도 언론을 통해('기녀저고리'라고 불리는 짧은 저고리, 진짜 유래는?), 조선 말기의 한복 저고리는 상당히 짧았으며, 치마마저 지금보다 좀 더 아래쪽에 묶어 입었기 때문에, 젖가슴이 드러나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런 패션은 기녀들로부터 출발한 것이지만, 여염집 여인네들도 널리 입었던 스타일이라고 말했다.

물론 조선 말기에 돈을 주고 양반을 사는 것이 크게 일어나면서, 이런저런 이상한(?) 양반집이 많아졌으니, 당대 유행하던 의복차림을 그대로 받아들인 사람들도 많았을 테다. 이런 시대적 상황 등을 따져보면 양반집에서도 충분히 가능했던 일이다.



그리고 KBS 역사 프로그램을 책으로 묶어낸 '역사야 놀자' 책에서도 이에 관한 언급이 있다. '조선시대 여성들이 노출패션을 즐겼다?'라는 소제목이 있는 단락을 찾아보면, 이 짧은 저고리는 젊은 층 사이에서 유행한 과감한 패션이었는데, 점점 여성들 사이에 인기를 모아 19세기엔 일상적인 옷으로 자리 잡게 됐다는 내용이 나온다.



따라서 조선 말기에 저고리와 치마 사이에 가슴이 어느정도 노출되는 패션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고, 이것이 상당히 오랜 시간동안 용인되었다는 것 또한 사실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 보수적인 유교사회에서 어떻게 그런 옷이 유행할 수 있었을까. 참 의문이긴 한데, 사실 잘 생각해보면 그리 미스테리하지도 않다. 조선시대든 무슨시대든, 왕도 마누라가 무서워서 함부로 첩과 동침을 하진 못했다. 어느 시대든 마누라 무서운 건 마찬가지 아닌가. 그런 상황에 아, 마누라가 이 패션 좋다는데 어쩔 텐가.

행여나 정말 엄격한 집안이 있어서 바깥어른 한 마디면 온 집안이 쩔쩔매는 곳이 있다고 치자. 그 사람도 자기 집 안에서는 그런 옷 입지 마라 할 수 있겠지만, 다른 집 아낙한테 감히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있겠는가. 따지고보면 제아무리 엄격하고 보수적인 사회 속에서도, 거의 항상 여자가 남자보다 강했던 거다.



이런 사실을 외면하고, 어찌 조선시대에 그런 원시인 적 노출이 있을 수 있냐고 말 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그런 노출이 꼭 원시적인 것은 아니다. 일례로, 장 클로드 볼로뉴의 '수치심의 역사'라는 책을 보면, 17세기 프랑스에서도 여성들 사이에 가슴이 훤히 다 보이는 패션이 유행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루이 13세는 이런 패션을 굉장히 싫어해서, 궁정무도회를 여는데 '유방을 드러낸 여자는 절대 출입금지'라고 조건을 내걸기도 했다 한다. 나중에 루이 13세 말기 쯤에 왕은 이런 의상을 아예 금지시켰는데, 그러자 여인들은 보는이의 상상력을 자극하게끔 좀 더 발달한(?) 의복차림을 하고 다녔다 한다.



따라서 이런 패션은 절대 원시적인 것도 아니고, 야만적인 것도 아니다. 왜 그런 유행이 발생하게 됐나 하는 여러가지 가설들이 있긴 하지만 (다들 그다지 만족스럽게 설명해 주지는 못 하고), 어떤 이유에서든 자연스럽게 발생한 것일 뿐이다. 그리고 조선의 경우는 특별히 제재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줬다는 데서, 우리 선조들의 융통성과 너그러움을 알 수 있다.

오히려 지금 와서 그런 패션을 용납하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가 됐다는 것은, 세상이 조선시대보다 오히려 더 보수적으로 변했다는 증거가 아닐까.














(불완전하지만, 더 깊게 파고 들어가면 논문이 될 가능성이 있으므로, 여기서 끊겠다. 너무 힘들고 귀찮아. 어쨌든, 하의실종 식상하다 상의실종 보여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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